가족끼리 걷기 좋은
시원한 밤 산책길
햇살이 강물 위를 미끄러지듯 흐르고, 나뭇잎은 뜨거운 빛을 머금은 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킨다. 한낮의 열기 속, 나무 그늘 아래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더위도 잠시 멈춘 듯하다. 도시의 소음은 멀어지고, 발끝을 따라 펼쳐지는 초록의 언덕은 잠시 일상을 내려놓게 만든다.
서울과 맞닿은 경기도 고양시, 그 한강변에 자리한 행주산성은 여름에 더욱 빛을 발하는 역사 산책지다. 한강과 자유로, 그리고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이곳은, 단순한 풍경 그 이상을 품은 곳이다.

행주산성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이끈 행주대첩의 무대이자, 지금은 누구나 편하게 오를 수 있는 도심 속 힐링 산책지로 사랑받고 있다. 높이 124m의 덕양산에 자리한 산성이지만, 오르내림이 완만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부담 없다.

산성의 대문 역할을 하는 ‘대첩문’을 지나면 짙은 나무 그늘이 드리운 산책길이 이어진다. 돌계단과 흙길이 번갈아 나오며 걷는 재미를 더해주고, 곳곳에 설치된 쉼터와 벤치는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다.
정상에 다다르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높이 15.2m의 ‘행주대첩비’다.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기념비 아래로는 유유히 흐르는 한강, 자유로를 달리는 차들의 행렬, 멀리 남산타워까지 한눈에 담긴다.
이곳에서의 전경은 단순한 조망 그 이상이다. 신행주대첩비 주변은 광장처럼 탁 트여 있어 여름 하늘과 맞닿은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면 탁 트인 시야 덕분에 사진 명소로도 인기다.

산성 곳곳에는 옛 전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물과 안내문이 배치돼 있어 아이들과 함께 오면 자연스레 역사 체험이 된다. 실제로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전략 요충지였으며, 임진왜란은 물론 한국전쟁 당시에도 주요 격전지로 기록된다.
행주대첩 당시 권율 장군은 불리한 병력에도 불구하고 신기전과 대완구 등의 무기를 활용해 왜군을 물리쳤다. 부녀자들까지 전투에 참여해 돌을 던지고 물자를 날랐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전해지며, 민관군이 합심한 승리로 남아 있다.
산책길 중간중간엔 문화재도 다양하다. 권율 장군 사후 장수들이 힘을 모아 세운 ‘행주대첩 초건비’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로, 당대 문장가 최립과 명필 한석봉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산성을 둘러본 뒤에는 바로 아래 이어진 행주나루공원까지 걸음을 옮겨보자. 강변 산책로와 쉼터가 이어져 있어 여름 저녁 강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7월의 행주산성은 여름의 정취 속에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뙤약볕 아래선 나무 그늘이, 땀이 흐를 땐 한강 조망이 그늘이 되어준다.

그저 걷기만 해도 마음이 시원해지는 이 길에서, 과거의 울림과 현재의 평온함이 겹쳐진다. 도심에서 멀지 않지만, 마음만큼은 멀리 떠날 수 있는 이 언덕 위에서, 여름은 조금 더 깊고 풍요롭게 흐른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주차료도 없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겨울철엔 오후 5시까지)이다. 10월까진 야간에도 개장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문화관광해설도 신청할 수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특히 좋다. 이번 주말, 행주산성과 행주나루공원에서 여름의 초록 언덕을 걸으며 힐링을 만끽해보자.